나일 강 삼각주에서의 충돌에서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함정이 향후 전함 개발에 전범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일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로프, 천과 같은 재료들로 만들어진 함정들이었을 뿐이다.
주목할 것은 배의 구조다. 배의 최대속력은 배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배가 길면 길수록 빨리 나아갈 수 있다. 널빤지가 상호 고정되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이집트의 선박 건조자들은 좀 더 길고, 그래서 좀 더 빠른 배를 건조할 수 있었다.
우선 한 널빤지의 가장자리에 홈을 파, 이웃한 널빤지 가장자리에 파놓은 홈에 들어맞게 했다. 그런 다음 나무 핀을 첫 번째 널빤지의 홈에 딱 알맞게 때려 박았고, 조심스럽게 일렬로 맞춰진 이웃한 널빤지에 튀어나온 핀을 다시 박았다. 핀의 한쪽 끝이 널빤지와 핀을 통과해 다른 쪽 끝으로 나온 장부촉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었다.
바닷물이 나무를 적실 때, 나무가 부풀어 올라 이음매를 튼튼하게 만들곤 했다. 대패로 반듯하게 밀 경우, 이음매의 다부진 결속을 통해 배가 최소의 저항을 받는 알맞은 모양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결속을 통해 널빤지의 모서리와 모서리가 결합될 뿐 아니라 널빤지의 끝과 끝도 단단히 결합되어, 배의 길이는 더 이상 구할 수 있는 나무 길이에 제약받지 않았다. 널빤지 붙이기가 끝난 뒤, 내부 틀이 부가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이 배를 대략 30미터 길이 이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배는 노 젓는 병사 30명(트리아콘테르) 또는 50명(펜테콘테르)과 단 하나의 돛대에 달린 사각돛으로 추진되었다. 2~5명의 병사 사이에 작은 앞갑판이 있었지만, 주된 무기는 적선의 널빤지를 뚫고 들어가 적선을 침몰시키도록 고안된 이물 쪽의 쇠돌기였다. 또한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돛대와 돛은 배에서 분리해 해변에 두곤 했다. 이렇게 해서 가벼워진 배는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었고, 갑판에 어지럽게 흩어진 것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배의 추진력을 더욱 증대시킬 때의 어려움은, 각각의 노잡이가 단 하나의 노를 저으며 배의 바깥쪽 가장자리 근처에 앉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이 노잡이들 사이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 다른 노가 그 사이 공간을 통과하게 만든 상태에서, 배 안쪽에 바깥 줄보다 약간 더 높게 추가 인원을 앉혀 놓았다. 노를 바깥으로 나오게 해주었던 구멍들 또한 서로 수직으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다. 각각의 노 젓는 자리에는 당시 2명의 노잡이가 버티고 있었다. 이런 유형의 배가 2단선이다.
2단선의 변형체가 1.5열의 노를 갖춘 헤미올라였다. 당시 상인들은 범선을 타고 움직였고 전함은 노의 힘으로 전투를 한 반면, 헤미올라는 추격용으로 고안되었다. 헤미올라는 노로 풍력을 보완해, 사냥감을 붙잡거나 전함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보다 빠른 속도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해적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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