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함정을 타고 나일 강 삼각주로 접근하는 동안, 바다사람들의 가족과 물자들은 소가 느릿느릿 끄는 달구지로 이동했는데, 아마 군병력의 호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송 행렬은 이집트 기병과 보조부대, 척후병의 공격을 받아 괴멸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전체 이집트 군대의 일부에 불과한 공격 부대는, 람세스가 적들의 작전과 동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그 사이, 바다사람들의 해군은 나일 강어귀에서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아마 북풍을 거슬렀던 것 같다. 일단 갈대밭 구역 안의 구불구불한 나일 강 삼각주 수로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자, 바다사람들은 함정에 빠진 신세가 되었다. 해당지역 수로는 안내인 없이는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어려웠고, 파피루스가 4~5미터씩 자라 덤불을 이루고 있어 잠복해 있는 이집트 함정의 돛대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해안 가까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바다사람들은 더 이상 진격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남쪽으로 흐르는 나일 강물이 북풍과 씨름하고 있을 때, 이집트 함정들이 바다사람들의 함대 앞뒤에서 나타났다.
이집트군 함정이 적선을 들이박기 위해 접근해가면서, 150미터 사거리에서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댔고 15미터부터는 창을 마구 던졌다. 적선과 충돌해 이집트 배의 쇠돌기가 적선 뱃전 위 끝을 밀면, 적선은 좌우로 흔들리기 십상이었다. 적선 병사들은 날아오는 투척물로 인해 이미 넋을 잃고 구석에 자빠지곤 했으므로, 이로 인해 배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배가 기울면서 적병들이 물속에 마구 빠졌다. 배에 달린 높은 뱃머리와 이물 덕분에 반대쪽 부력이 작용하면서 그나마 완전히 뒤집히지 않은 배들도 있었겠지만, 바다사람들의 전함 대부분이 뒤집히고 말았다. 메디넷하부 사당에 있는 람세스 왕의 전투 기념비에 새겨진 그대로다.
누구도 대적할 방법을 몰랐던 무도한 셰르덴족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함을 타고 과감하게 항해해 왔으니, 아무도 그들에 맞설 수 없었다.— 타니스에서 출토된 돌기둥에 새겨진 람세스 2세의 비문에서 사상자는 소수였어도 그런 작은 배의 순항엔 엄청난 타격이었다. 배 위엔 의료시설이 전혀 없었으므로, 부상자들은 고통을 그대로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돛대와 활대를 세워두고, 돛은 계속 걷어놓은 상태로 싸웠다. 이로 인해 배가 더더욱 불안정해 바다사람들은 이집트 함정의 충돌에 속수무책이었다. 전투 도중 양측 병사들 모두 연신 물속에 빠졌지만, 최종적으로 괴멸된 함대는 바다사람들 쪽이었다.
일부 바다사람들은 포로가 되었다가 나중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메디넷하부의 람세스 3세 비문에는 공격해 온 함대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배들은 질질 끌려가 전복되어 해변에서 파괴되었다. 병사들이 타고 온 갤리선의 이물에서 고물까지 시체가 즐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