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콜센터》, 소설집 《쇼룸》을 통해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핍진하게 그려온 소설가 김의경의 신작 소설집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두리안의 맛》에 수록된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사회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공장에 출근하고, 팬데믹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어른들의 관심 밖에 놓인 비행청소년들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이틀에 한 번 꼴로 당일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근근이 먹고살아가는 인물들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부품처럼 부려지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복판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비단 청년세대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삼각김밥 공장에 젊은 노동자들이 유입될 때마다 위기를 느끼며 뼈가 부서져라 애쓰는 칠십대 할머니 소순(〈순간접착제〉)과, 백화점에서 감정 노동을 하던 기억을 회상하는 사십대 여성 ‘나’와 ‘혜수’(〈호캉스〉)의 상황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고 은퇴 이후의 삶이 막막해지면서 노후 준비 또한 녹록지 않아 이렇다 할 대안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 힘겨운 공존을 눈앞에 두고 세대 간의 결속을 위해 이 소설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두리안의 맛 책소개
“존재성을 위협받으면서도 단단하게 구축하려는 연결의 관계망,
상처를 내보이고 끊임없이 서로를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소설” _허희(문학평론가)
날 선 추위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온기
잡은 손을 놓지 않기 위한 애씀의 나날들
수림문학상 수상 작가 김의경 소설집 출간
장편소설 《콜센터》, 소설집 《쇼룸》을 통해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핍진하게 그려온 소설가 김의경의 신작 소설집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두리안의 맛》에 수록된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사회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공장에 출근하고, 팬데믹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어른들의 관심 밖에 놓인 비행청소년들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이틀에 한 번 꼴로 당일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근근이 먹고살아가는 인물들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부품처럼 부려지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복판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비단 청년세대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삼각김밥 공장에 젊은 노동자들이 유입될 때마다 위기를 느끼며 뼈가 부서져라 애쓰는 칠십대 할머니 소순(〈순간접착제〉)과, 백화점에서 감정 노동을 하던 기억을 회상하는 사십대 여성 ‘나’와 ‘혜수’(〈호캉스〉)의 상황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고 은퇴 이후의 삶이 막막해지면서 노후 준비 또한 녹록지 않아 이렇다 할 대안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 힘겨운 공존을 눈앞에 두고 세대 간의 결속을 위해 이 소설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가로놓인 사회의 벽 앞에서도 꿋꿋하게 나아가야 하는 청년세대의 고민, 불안정한 중장년층의 거주 문제, 노년층 노후 문제 등 김의경 소설은 차가운 현실을 맨몸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이들의 삶을 날카롭게 묘파한다. 그러는 한편 예의 소소한 위트와 은은한 온기 또한 잃지 않는다.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부딪치고 날을 세우면서도 주변의 약자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 그들은 끝끝내 서로를 보듬고 일으켜 세운다.
“우리는 백화점에 들어가기 전에 이 근처에 있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이 끝나면 종종 남산 산책로에 갔다. 진상 고객에게 시달린 날도 산책로를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_〈호캉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어떤 곳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두리안의 맛》엔 다양한 여성 노동자가 등장한다. 특히 세대를 막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공간에 부대끼며 형성되는 느슨한 연대가 괄목할 만한 지점이다. 팬데믹 시기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삼각김밥 공장에 들어간 ‘나’와 ‘예은’은 작업장에서 유독 텃세를 부리는 칠십대 할머니 소순을 경계하고 싫어하지만, 소순이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되며 그를 달리 보기 시작하고(〈순간접착제〉), 백화점에서 오랜 시간 감정 노동을 해온 ‘나’와 혜수는 국내 최고급 호텔로 우정 여행을 떠나지만 혜수 엄마와 닮은 청소부를 만난 이후로 휴가에 임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호캉스〉). 한편 졸업 이후 취직이 되지 않아 단기알바를 전전하던 ‘나’와 하령은 시디 공장에서 만나 함께 살기로 하고, 높기만 한 현실의 벽 앞에서도 함께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시디팩토리〉), 반지하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나’는 갑자기 퇴거 요청을 해온 주인집 딸과 마찰을 빚지만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그와 조금씩 가까워진다(〈주인집 딸〉).
“나는 하령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앞으로 같이 알바를 다니자고 했다. 하령은 그럼 덜 심심하겠다며 좋다고 했다. (……) 밖으로 나와 걷는데 웃음이 나왔다. 엉뚱하고 재미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처지라서인지 하령과 이야기하는 것이 편했다.” _〈시디팩토리〉 중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 또한 눈에 띈다. 고등학교 동창인 ‘나’와 ‘수현’은 학생 때는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져 가족처럼 지내왔다. 먹방 유튜버로 유명해진 ‘나’의 딸 유지는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잘 먹는 척을 하며 콘텐츠를 찍고, 대중들은 그런 유지를 좋아하면서도 자극적인 방식으로 돈을 번다며 욕을 한다. 유지는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기도 버거운 와중 친구 효나가 성 착취 동영상 때문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유라TV〉). 한편 태국으로 공짜 여행을 떠나게 된 파워블로거 윤지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들뜨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블로거가 아니라 블로거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에 빠진다(〈두리안의 맛〉).
“윤지는 그동안 고집스레 지키고 있던 블로거로서의 정체성이 훼손된 느낌을 받았다.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블로거지. 공짜 여행을 통해 배운 교훈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_〈두리안의 맛〉 중에서
“그러니 도리 없이 읽어야 하겠다.
당신에게 아직 인간다움이 중요한 가치라면.”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두리안의 맛〉은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팸투어를 떠나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윤지는 파워블로거로서 패키지여행을 제공받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고, SNS에 홍보를 한다. 소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들, 온라인 공간 속 불특정한 인물의 날 선 공격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며 공짜로 갈 수 있는 해외여행에 들뜬 마음만 품고 있던 윤지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딜레마를 ‘직면’하고 ‘사유’하고 ‘결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윤지가 익숙한 한국을 떠나 낯선 여행지로 이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일상을 떠나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나듯이. 그러니 어쩌면 윤지는 이 소설집을 집어 들어 읽고 있는 우리를 대변하는 인물일지 모른다. 문학평론가 허희의 말처럼, 김의경의 작품은 “동시대 독자의 무수한 응답과 논의를 필요로” 하고, “비주류의 면면을 통하여 오늘날 세상의 단면―우리가 정말로 모르거나, 알면서 모른 척하는 실재를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